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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일본 정부가 보내는 ‘논란의 인물’…외교부는 “우리 요구 수용한 것”
일제강점기 일본 사도광산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이 내일(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현지에서 열립니다. 추도 대상에는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세심하지 못한, 또는 무성의한 결정으로 행사 막판까지 잡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지난 20일, 한일 양국이 추도식 일정을 발표한 날에도 우려는 있었습니다. 당일 외교부는 협의 진행 과정을 기자단에 미리 설명했는데, 들어 보니 추도식에 참석할 일본 정부 대표도, 추도사 내용도 확정되지 않은 채였습니다.그리고 이틀 만인 어제(22일) 정부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22일(금) 오전 11시 35분경 : 일본 외무성, 정무관 파견 발표일본 정부를 대표해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할 인물은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이라고 일본 정부는 밝혔습니다. 2022년 참의원 선거에 도전해 당선된 가수 출신 정치인으로, 이시바 내각에서 정무관직에 임명됐습니다.정무관은 한국에는 없는 낯선 직책인데, 직제상 외무대신(한국의 외교장관)-외무 부대신(외교차관) 다음인 차관급 인사로 주로 의회 의원들이 맡습니다. 그간 한국 정부는 중앙정부의 '차관급' 인사가 반드시 추도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는데, 일본이 이를 수용한 결과로 보였습니다. 오후 12시경 : 이쿠이나 정무관 '야스쿠니 참배 이력' 국내 언론 보도 시작일본 정부 발표 직후,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 15일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는 사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를 내고, 각료 다수 및 이쿠이나 정무관을 비롯한 자민당 의원 20여 명이 신사를 직접 찾았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그녀가 출마 이후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마이니치신문 설문에 "대립하는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고 답한 사실도 알려졌습니다.한국 외교부에는 이러한 인물을 추도식에 대표로 보내기로 한 일본의 결정이 적절했는지를 묻는 기자들 질문이 접수됐습니다. 오후 2시에는 추도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외교관이 일본과의 협의 상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기로 예정돼 있었습니다.오후 1시 55분 : 외교부 브리핑 취소 통보외교부는 시작 5분 전,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유를 묻는 질문이 쇄도했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는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외교부의 입장을 정리해 다시 배포하겠다고 말했습니다.브리핑 취소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언행과 무관하지 않은 거로 알려졌는데, 외교부가 협의 과정에서 이력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오후 9시 11분 : 외교부 입장문 공지외교부의 입장은 오후 9시를 넘겨 기자단에 공지됐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해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측에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해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임.""동 정무관은 일본 정부 대표로서 추도사를 하게 될 것임." 단순 사실관계만을 밝히는 짧은 입장문이었습니다. 고위직 파견은 일본이 한국 정부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이며, 한국 정부도 일본의 결정을 수용한다는 취지입니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이 적절한지, 또는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외교 관례상, 코앞에 다가온 추도식을 앞두고 상대국의 결정을 번복하라고 요구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한국이 어깃장을 놓아도, '사도광산 추도식'은 한국 노동자들만을 추모하는 행사는 아니라고 이미 일본과 합의했기에,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상황이었습니다. 참석자의 '직책'이 중요하지, '개인'의 과거 언행은 별개의 문제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추도식 자체만으로도 이전에 없던 '진전'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싸늘한 국내 여론은 피해 가기 어려워 보입니다.외교부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곳"이라고 분명히 밝혀 왔습니다.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여했던 2022년 8월 15일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에 대해서도 당시 "일본 정부와 의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는 대변인 명의 논평을 냈습니다.또한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했습니다.한국 정부 대표로는 박철희 주일본대사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일본 전문가인 박 대사는 지난달 18일 도쿄에서 열린 주일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됐습니다.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그는 "한국인 강제동원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 못 하겠느냐"는 야당의 질타에 박 대사는 "못 한다는 얘기는 안 드렸지만, 한다고도 제가 지금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고요"라고 답했습니다. "외교적 파장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해야지요"라고도 발언했습니다.여당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나서서 "아무리 상대국(일본)을 존중하더라도 정부 입장은 명확하게 '강제동원'이라고 말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박 대사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한발 물러났습니다.추도식은 내일 오후 1시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11명은 예정대로 행사에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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