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신만의 문옥경 발견한 '국극계 황태자' 정은채
정은채, 프로젝트 호수 제공 배우 정은채(38, 본명 정솔미)가 tvN 주말극 '정년이' 문옥경 역을 통해 '국극계 황태자'로 떠올랐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며 정은채를 향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진 상황. 중성적인 매력으로 안방극장의 심장을 '심쿵'하게 만든 파격적인 쇼트커트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정은채는 "사실 방송할 때는 잘 안 돌아다녀서 몰랐는데 끝나고 며칠 전에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에 내려갔다가 왔다. 동네 어르신들과 오랜만에 만났는데 악수 한 번씩 돌렸다.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하니 '많은 분이 봐주셨구나!'가 체감됐다"라고 털어놨다. 무르익은 연기력으로 인생 캐릭터의 탄생을 알렸다. 타고난 소리 천재 김태리(정년)를 발견하고 그를 국극으로 이끌며 인상을 남겼고, '자명고'에선 국극의 황태자다운 연기와 소리로 흡인력을 높였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국극 스타지만, 권태에 빠져있고 속을 알 수 없는 공허한 캐릭터의 속내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문옥경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매란국극단의 남자 주연을 도맡아 하고 있는 국극 최고의 황태자 캐릭터의 구현을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연습을 펼친 덕분이었다. 정은채는 화제성까지 사로잡으며 행복한 2024년 연말을 맞았다. -작품의 흥행 예상했나. "반반이었던 것 같다. 시도하는 것들이 많아서 어떤 면에선 신선할 수 있지만 처음 보는 느낌의 드라마라 생소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지수였다." -원작에서 문옥경은 그렇게 큰 인물은 아니었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문옥경 캐릭터는 인물 소개에 간단하게 '매란국극단을 대표하는 남자 주역' '주인공을 항상 도맡아 하는 국극단의 얼굴' '모든 소녀팬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극단 안에서도 어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소개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대본을 보고 이 인물을 어떻게 그려나가야 하나 생각했을 때 정년이의 시선으로 본 문옥경이 중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석을 알아보고 성장할 수 있게끔 삶에 어떤 길잡이가 된 키다리 아저씨 같은 따뜻한 인물로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내가 원하는 작품이나 역할을 선택해서 하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온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이 내게 찾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이끌리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작품을 선택해서 해왔던 편이다. 그런 면에서 문옥경이란 캐릭터가 너무 신선했고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했던 캐릭터라 반가운 마음에 잘해보고 싶었다. 큰 도전이겠지만 배우 인생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선택했다." -외적인 변화가 컸다. "역할로도 사실 굉장히 큰 외적인 변화였고 살면서 이렇게까지 쇼트커트를 해본 적은 없었다. 어떤 대단한 마음가짐이 있거나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나와 잘 묻어야 하고 원작이 있기 때문에 보는 분들이 얼마만큼 매력적으로 캐릭터랑 부합해서 봐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새로운 시도였는데 그런 시도를 반갑게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다." 정은채, 프로젝트 호수 제공 -쇼트커트의 매력을 느끼고 있나. "너무 편하고 가볍다. 그런데 촬영할 때는 거의 1년 정도 같은 머리 길이를 유지해야 하니 길이에 맞춰 자주 자르고 관리해야 했다." -국극도 처음인데 게다가 남역이었다. "여성 국극이라는 것 자체를 '정년이'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이게 어떤 것인지 공부하는 단계부터 시작됐고 우리가 흔히 봐왔던 어떤 걸 재연한다기보다 무지했던 분야를 처음 접하고 습득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도전했던 것 같다." -직접 경험을 해 본 국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흔히 알았던 판소리가 아닌 화려한 안무와 연기들, 무대 장치들과 음악이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하는 종합 예술이다. 그리고 이번 '정년이'에서의 모든 무대들이 좋았다. 무대 극들의 색깔이 다르고 느낌도 다르고 음악 쓰임도 무드도 달라 개성 넘쳤다. 그게 우리의 어떤 옛 것의 느낌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잘 해석해서 여성 국극을 처음 접한 분들에게 쉽게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김태리, 신예은과의 호흡은 어땠나. "두 배우 모두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태리 같은 경우는 타이틀롤을 맡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 정말 많은 역할이었는데 노래, 춤, 연기, 사투리 그런 걸 다 멋지게 해내더라.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극에서 내가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연기를 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대단한 배우다. 현장에선 굉장히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다. 에너지가 바닥나지 않는 캐릭터더라. 어디서 끌어오는지 모르겠지만 배울 점이 많았다. 극 안에선 내가 정년이의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실제로는 태리가 내 선망의 대상이었다. 예은이 같은 경우 촬영하면서 정말 영서 같다고 느꼈다. 보면 볼수록 싱크로율이 맞아떨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진짜 노력형인 것 같다. 누구와의 경쟁이 아닌 모두가 각자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싸움에서 다들 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촬영 끝까지 이어나간 게 대견하다." -결말에 대한 생각은. "이 인물이 처음부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극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한 나는 어떤 서사를 가졌는지 상상하지 않나. 시작부터 그 마음을 안고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극이 시작되는 첫 등장부터 문옥경은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고 언제든지 발길이 닿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인물이라 급작스럽거나 당황스러운 지점은 아니었다. 그걸 상상치도 못했던 시청자분들에겐 놀랄 만한 결말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문옥경의 그 이후 이야기를 상상해 본 적 있나. "영화판으로 갔으니 영화를 했을 것 같다. 성공 여부는 잘 모르겠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마지막 '쌍탑전설' 공연할 때 한 번은 관객석 뒤에 얼굴을 비추지 않을까 시청자들분의 기대가 있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게 익숙했던 패턴인데 그게 아니라서 놀랐고 재밌었다. 감독님과 옥경이란 캐릭터는 훌쩍 사라지고 생각보다 만날 수 없는 존재일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마음먹기까지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한 번 돌아서면 돌아선 길로 쭉 갈 사람이란 점에 동의했다." 정은채, 프로젝트 호수 제공 -김윤혜와의 "잘 있어, 공주님" 마지막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혜랑이를 연기한 윤혜 씨랑 나랑 연기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국극 장면이었다. 서로가 진짜 왕자님과 공주님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현장에서 농담 식으로 그렇게 부르곤 했다. 문옥경과 서혜랑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왕자님과 공주님의 비중이 크기도 하고 그들의 삶 속에선 분량으로 따지면 이게 더 비중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연기를 할 때 전혀 이상함을 못 느꼈다. 신선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그 신을 찍을 때 너무 좋았고 슬펐다. '이 한 문장으로 왕자, 공주의 시대가 마무리가 되는구나! 이렇게 이별하는구나!' 싶었다." -편집됐지만 둘 사이 키스신도 있었다고 하더라. "대본에는 '잘 있어 공주님'이란 대사 직전에 있었던 것 같다. 촬영도 진행했다. 드라마 속 장면들은 편집 과정에서 통째로 날아가기도 하고 다시 길게 찍기도 한다. 대본상 있는 것들을 다 촬영하지만 편집은 편집하는 분들의 몫이지 않나. 가장 적합하고 알맞은 온도로 편집해 줬던 것 같다." -문옥경 연기를 위해 집중했던 포인트는. "내게 숙제로 내려진 건 '정년이' 속 문옥경 역할, 그리고 무대 위에서 왕자님 역할 두 가지였다. 두 개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문옥경을 연기할 때는 생각보다 힘을 많이 뺐다. 과장스럽거나 인위적으로 보이는 게 문옥경이란 캐릭터와 안 맞는 느낌이 들어서다. 완급 조절에 대해 섬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무대 위의 왕자님은 별개로 문옥경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힘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을 봤을 때 느껴지는 웅장함 같은 걸 차별화해서 극대화시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기하며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 "완급 조절이라는 게 어려웠다. 처음 대본을 보고 시나리오 원작을 봤을 때 캐릭터가 매력 있었다. 중성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게 두렵거나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그런 면이 스스로 많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있는 걸 잘 뽑아서 하면 말이 안 되지는 않겠다 했는데 무대 위 왕자님은 어려웠다. 아무리 크게 보이려고 웅장하게 보이려고 해도 생각보다 뭔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날 보게 되더라.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도 어떤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무대 감독님, 안무 감독님과 상의하며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캐릭터를 위해 증량도 시도했나. "증량은 하지 않았고 극 중 입었던 옷들이 어깨 각이 떨어지는 남성복이 많았다. 그래서 그걸 멋있게 소화하기 위해 운동을 했다. 일상의 움직임 자체가 의상이랑 편하게 묻어나게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움직였다. 연습할 때도 연기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게끔 1년 동안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소리, 안무도 직접 소화했다. "캐스팅이 완료되고 촬영 들어가기 한 3, 4개월 전부터 거의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넉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바로 연습에 투입됐다. 극이 후반부에도 있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거의 계속 트레이닝을 했다. 촬영 없는 날엔 수업하고 연습실에서 트레이닝하는 일정으로 거의 1년 정도 살았다." -시청자들의 반응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너무 좋은 피드들을 많이 줬다. 일단 우리 드라마 자체를 새롭지만 너무나 즐겁게 봤다는 반응들이 가장 기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내 캐릭터에 대해 '정은채가 연기한 문옥경이 참 좋았다' 이런 담백한 피드백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극에서 정년이에게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때 '너만의 방자를 찾아봐' 이런 식의 조언을 해주는데 나만의 문옥경을 잘 만들어서 마무리가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은채, 프로젝트 호수 제공 -공개 열애 중인 남자 친구 김충재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정말 할 말이 없다.(웃음) 측근들이나 주변인들, 가족들, 친구들은 '정년이'가 방영되던 시기 동안 팬으로서 시청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있었지만 그 시간은 우리가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도 너무 많은 응원을 받고 지지를 받아서 정말 행복한 나날이다." -이번 작품 후 많은 용기를 얻었겠다. "기절적인 면으로 많은 배움이 있었다. 그걸 떠나 작품적으로 봤을 때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구나!'란 생각을 했다. 시작은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결국 어디에 있을지 상상이 안 되는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서 처음 가보는 길을 가보니 '새로운 뭔가를 만났구나!' 싶다. 앞으로도 작품 할 때 그런 부분에 있어 조금 더 이런 식으로 용기를 가져도 되겠다 싶다." -평상시 일상은 어떻게 보내나.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모르는 상태라 자연인 상태로 지내고 있다. 평상시엔 은퇴자의 삶처럼 산다. 거의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촬영하면 최소 6개월, 길면 1년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나.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고 그러니 그 외의 시간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게 필요한 사람이다. 거의 뭐 잔잔한 호수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발굴해서 이 자리까지 왔을 텐데 자신에게 원석의 자질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어떤 타고난 기질이 있던 것 같은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노력이란 걸 알고 있다. 그때그때 애를 쓰며 연기했던 것 같다. 열정과 에너지는 꽉 차 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정년이의 상황을 보며 신인 시절이 떠올랐다. 그게 겹쳐 보이며 '얼마나 불안하고 떨릴까?' 싶더라. 연기 시작할 때 마음을 가지고 연기했던 것 같다." -나만의 문옥경이 있다면. "어떤 한 인물로는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내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줬던 사람, 묵묵히 뒤에서 지지해 줬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문옥경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됐다."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나. "이제 점점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발랄하고 귀엽고 따뜻한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분간 좀 힘들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나이에 따라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한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그때를 포착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 -끝으로 연말 계획 및 내년 목표는. "일단 예정된 작품 촬영 계획은 없다. 지금 잡혀 있는 스케줄을 잘 소화하고 올해를 마무리할 것 같다. 얼른 또 좋은 작품을 만나 내년엔 촬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