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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볕 들 날 언제쯤?…이번엔 ‘상법 개정’ 공방
지난 14일 국내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5만 원 선 아래로 추락하며 주식 시장에 또 한 번 충격을 줬습니다. 이후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고 자사주 매입 결정이 나오며 다시 5만 원대를 회복하긴 했지만, 회복세는 미미합니다. 지지부진한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우리 증시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올해 들어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등 우리 증시 저평가 문제 해소를 위한 다양한 부양책이 나오고 있지만 약발이 받지 않는다는 평가입니다. 대외적 요인까지 겹치며 저평가 현상은 되레 더 심화하는 양상입니다.코스피 수익률은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8.98%(종가 기준)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은 23.78%, 일본 닛케이225는 15.42%를 기록했습니다. 중국이나 타이완, 유로권까지 떨어진 곳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 코스피보다 하락률이 높은 곳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20.79%)가 유일했습니다.국내 주식 시장의 '나 홀로 추락' 배경으로 여러 이유가 지목되는 가운데 최근 '상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습니다.■ 이사충실의무 '주주'로 확대…"소액주주 보호" 상법 제382조의 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돼 있습니다. 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업만 이익을 보고 주주들은 과실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구조 탓에 국내 기업들의 주가 부양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기존 입장을 바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로 선회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방향의 상법 개정에도 힘을 싣는 분위기입니다. 당론으로 추진하고 연내 국회 본회의에서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입니다.민주당에서 발의된 법안을 보면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주 보호 의무 조항이 담겼습니다.현재는 기업의 이사들이 주로 대주주 입장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법이 시행되면 일반 주주들이 보다 명확하게 이런 판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깁니다.총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집중투표제 시행을 의무화하고 주주총회에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별도 선출하는 감사위원을 현재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역시 일반 주주 의결권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원인이 기업의 지배 구조에 있다고 보고, 이 같은 방향의 상법 개정안에 대체로 찬성하고 있습니다.■ 재계 반발 "기업 경영 족쇄·경영권 침해 우려"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에 드라이브를 걸며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재계는 이례적으로 주요 16개 그룹 사장단 '긴급 공동 성명'까지 내며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지난 22일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16개 그룹 사장단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중단을 요구했습니다.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이 남발할 수 있고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애로를 겪게 할 것이란 이유를 들었습니다.특히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주주 충실의무' 조항을 근거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과도한 경영권 개입에 나설 거라는 데 기업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주요 그룹이 이렇게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은 2015년 당시 메르스 유행으로 내수 침체가 이어지던 시기 이후 9년여 만입니다.기업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불확실한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도 함께 밝혔는데, 현재 논의되는 상법 개정안이 부담을 더욱 키울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뜸 들이던 금융당국, 사실상 반대 "부작용 우려" 올해 초 한국거래소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상법 개정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도 나왔는데, 그 후로 금융당국의 입장은 명확히 나오지 않았습니다.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업과 개인 투자자, 학계 등의 의견을 청취하며 상법 개정 논의를 공론화시키긴 했지만, 법 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사안의 성격상 법무부 등 다른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관망하던 금융당국은 10개월여 만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어제(23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야당에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오히려 기업 주가에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김 위원장은 "근본적인 증시 체질 개선을 위해 기업지배구조가 더 투명하게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그 방법이 상법 개정일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라며 "외국계 투기 자본이 기업에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고, 그러면 기업들은 대응을 위해 자본을 쓸 수 있고 기업들 가치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이어 "지금 지배구조 문제는 주로 합병이나 분할 측면에서 문제가 됐던 것이라 판단해 여기에 대해선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합병의 경우 현재 시가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만큼 공정한 가액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외부 평가를 받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분할의 경우 우량한 자회사를 물적분할해 상장할 경우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만큼 상장할 때까지 자회사 주식을 일정 부분 배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여당인 국민의힘도 상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법의 기본 뼈대가 되는 상법 자체를 고치는 것보다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핀셋 조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모든 기업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과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뢰 잃은 국장…'투자자 탈출' 가속화 전문가들은 우리 주식시장 저평가 문제를 단순히 한 가지 원인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처방 역시 하나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로 가닥이 잡히며 주식시장이 반등했지만 그 효과가 하루 이상 가지 않았다는 게 일례입니다.악재는 오래가고 호재는 잘 반영되지 않는 것도 우리 주식 시장의 특징인데 그 기저에는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단기간의 주가 급등락에 연연하지 않고 믿고 오랫동안 지켜보며 돈을 넣어둘 기업들이 많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자신의 돈을 맡기는 투자자들의 냉정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불신은 수치로 나타납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 종목 2개 가운데 1개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PBR이 1배보다 낮으면 보통 주가가 저평가됐다, 1배 이상이면 고평가된 상태로 보는데 상장 종목 2,685개 가운데 50.87%(1,366개)가 PBR이 1배에 못 미쳤습니다.개인 투자자들은 더는 국장에서 못 버티겠다며 돈을 빼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자산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비트코인 등에 돈이 몰리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이대로라면 국내 주식시장 탈출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신뢰를 잃은 시장에 돈을 투자할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방향이 상법 개정이 됐든 자본시장법을 보완하는 것이든 더는 늦지 않게 주주들이 기업을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뭔가 답을 내놔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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